하윤은 주방 식탁 위, 어제 놓아둔 그대로인 머그잔을 응시했다. 창밖으로는 늘 보던 거리의 풍경. 세상은 아무 일 없던 듯 고요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왜 제자리인 것은 자신뿐일까. 손가락 끝이 시려와 뜨거운 잔을 감싸 쥐었다.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잘 지내요.” 그 흔한 인사말조차 목울대에서 맴돌 뿐이었다.
문득,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작은 상자가 떠올랐다. 망설임 끝에 열린 상자 안에는 빛바랜 편지 한 통과 작은 조약돌 하나. 제주 바닷가에서 함께 주웠던, 조약돌의 매끄러운 감촉이 손바닥에 닿자 하윤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모든 소리가 멀어지고, 파도 소리와 함께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스치는 듯했다. 재회에 대한 덧없는 기도가 다시금 가슴을 옥죄었다. 조약돌을 꽉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작은 돌멩이가, 마치 그를 잃은 세상의 모든 슬픔을 삼킨 듯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