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 벤치가 차갑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정신을 붙든다. 도시의 불빛들은 빗물에 젖은 유리창 너머로 흐릿하게 번져 긴 꼬리를 그린다. 잊으라, 뒤돌아보지 말라 했다. 나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살아가라 했다. 가슴은 억지로 눌러 담은 활화산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채 부풀어 오르고 있다. 숨 쉴 때마다 삼켜진 그 이름이 핏줄을 타고 비명처럼 속삭인다.
세상은 고요하다. 막차마저 떠나버린 정류장에 나 홀로 남겨진 이 밤은 오직 나의 침묵을 증폭시킬 뿐이다. 침묵은 귀청을 찢을 듯, 목구멍에 갇힌 비명을 키운다. 억지로 밀어 넣었던 그들의 얼굴, 미소, 눈빛, 그리고 내가 뱉어낸 거짓말들이 불처럼 타오르며 내 안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행복해라, 행복해야만 한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소원이었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유일한 길이었다. 이 고통을 내가 감당해야 할 유일한 이유였다.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다. 심장 어딘가에 박혀있던 쐐기가 뽑혀 나가는 듯한 격렬한 고통이 온몸을 찢는다. 댐이 무너진다. 굳게 닫았던 어깨가 격렬하게 요동치며, 입술 사이로 소리 없는 절규가 터져 나온다.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낡은 코트 깃을 적신다. 턱선을 타고 흐른 눈물이 벤치에 닿아 차갑게 식는다. 나는, 나를 지워버린 이 밤의 한가운데서, 존재하지 않는 나를 위해 흐느낀다. 이것이 그들을 위한 '자유'가 내게 주는 맛이다. 쓰디쓰고, 나를 짓누른다.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내가 내린 선택이었고, 내가 짊어져야 할 영원한 몫이다. 손을 뻗어, 단 한 번만이라도 기억해달라고, 나의 존재를 지우지 말아달라고 빌고 싶지만, 할 수 없다. 그럴 자격조차 내겐 없다.
이제 이 텅 빈 메아리와,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고독한 울음과 함께 살아야 한다. 저 멀리, 차갑고 무심한 달이 이 고요한 고통을, 마치 아무 일도 아닌 듯이 내려다본다. 마치 내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영원히 사라져버린 그림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