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의 회색빛 공기, 매캐한 매연 냄새, 그리고 귀를 찢는 경적 소리 속에서, 내 시선은 한 점에 고정된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빛 한 조각이 그대 머리카락 위에 내려앉아 부서진다. 주변의 모든 소음은 아득해지고, 그대의 어깨에 걸친 낡은 가방, 주머니에 숨긴 듯한 손, 그 모든 움직임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영상처럼 슬로우 모션으로 재생된다. 문득, 그대가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 순간, 내 안의 모든 감각이 그 한숨에 집중된다.
문득, 옆을 지나던 스쳐 가는 사람들의 흐릿한 얼굴들, 급하게 울리는 전화 벨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뉴스 속 시끄러운 세상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색이 바래고, 모든 소리가 먹먹해지면서, 오직 그대만이 선명한 필름처럼 내 앞에 남겨진 듯했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이 거대한 도시에 홀로 남겨진 듯한 나였지만, 그대라는 존재 자체가 나에게는 모든 풍경이자, 모든 소리이며, 모든 감각이었다. 그저 숨 쉬고 있는 그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내 모든 감정의 근원이, 내 모든 고요와 폭풍의 이유가, 그저 이 작은 순간, 이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그대라는 사실에, 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경외감에 휩싸였다. 마치 거대한 파도가 덮치듯, 존재의 심연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뜨거운 것이 목을 메고,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모든 사랑의 정의가, 지금 이 순간, 그대의 존재 앞에서 무의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대 없이는 단 한 순간도 나란 존재는 온전할 수 없음을, 온몸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내 버스가 덜컹이며 멈춰 섰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현실의 소음이 다시 밀려들어왔다. 사람들은 무표정하게 버스에 오르고 내렸다. 하지만 내 안의 모든 것은 이미 변해버린 뒤였다. 그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그대의 옆에 서서, 나는 이 침묵의 고백을 마음속 깊이 새겼다. 어떤 계절이 오고 어떤 시간이 흘러도, 이 마음은 변치 않을 것임을. 널 예쁘게, 이 세상 그 어떤 말보다 더 아름답게 사랑할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