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퇴근길 버스 안, 내 어깨를 짓누르는 건 앞 사람의 배낭만이 아니었다. 오늘 하루 종일 내 발목을 잡던 모든 ‘왜 왜 왜’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숨통을 조였다. 아침에 쏟은 커피, 겨우 맞춰 놓은 마감 시간을 비웃듯 오류 난 파일, 전화기는 진작에 먹통이 되어버렸고, 방금 전엔 엉뚱한 문자 메시지를 보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창밖은 이미 칠흑 같은 밤이었다. 흐릿한 가로등 불빛이 젖은 아스팔트에 번져나가고, 창에 비친 내 얼굴은 마치 엉망진창인 하루를 통째로 복사한 듯 일그러져 있었다. 내 안의 모든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서 ‘버벅 버벅’, ‘삐걱 삐걱’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에겐 그저 평범한 출퇴근길이겠지만, 내게는 이 버스 안이 거대한 전자레인지 속 같았다. 답답함이 끓어 넘쳐 피부 아래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한숨을 쉬려 해도 이미 폐 속 공기마저 버거운 무게로 짓눌러져, 푹, 하고 깊게 뱉을 수도 없었다.
그때였다. 내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몸을 크게 뒤척이며 나를 밀쳤다. 휘청거리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낡은 에코백이 바닥에 떨어지며 안의 내용물이 쏟아졌다. 구겨진 영수증, 다 쓴 볼펜, 그리고 가장 소중했던 나의 작은 우쿨렐레가 툭, 하고 버스 바닥에 굴러떨어지는 소리. 순간, 머릿속에서 모든 인내심의 회로가 ‘띵 띵 띵’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내 안에서 뭔가가 터져 나왔다. “젠장!” 소리 없는 비명이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울분 대신, 나는 갑자기 피식,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바닥에 굴러떨어진 우쿨렐레를 내려다보는 내 눈빛은 더 이상 절망이 아니었다. 이 하루의 모든 ‘글리치’들이 나를 집어삼키려 들었지만, 나는 부서지지 않았다. 아니, 부서질 수 없었다. 이 모든 혼돈 속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래, 망했어. 그런데 어쩌라는 거지? 이 망한 하루가 나를 망가뜨릴 수는 없어.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했다. 이젠 이 혼돈을 받아들이고, 그냥 흘러가게 두는 것. 그것이 나의 유일한 싸움이자, 나의 승리였다. 엉망진창이 된 내 하루를 향해, 나는 고요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이, 오늘은 네가 이겼다 쳐. 하지만 내일은 내가 하겠지, 뭐!’ 심장이 경쾌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이 모든 짜증을 뒤로하고, 나는 기꺼이 나아갈 참이었다.
버스 문이 열리고, 차가운 밤공기가 폐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마치 온몸의 먼지가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오늘 하루는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나를 무너뜨리려던 모든 것들 앞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결국 내일의 나를 기약하는 단단한 용기를 찾아냈다. 발걸음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내 안에서는 밝고 경쾌한 우쿨렐레 선율이 울려 퍼지는 듯했다. 그래,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아니, 괜찮아질 거야, 반드시. 그리고 내일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