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또 온다. 나는 그저 젖은 채 모래 위에 앉아 있다. 차가운 물이 발목을 감쌌다 밀려나고, 그 진창 위에 엉덩이를 묻은 채 움직일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움직임이 저 파도에 담겨 출렁이는 것 같은데, 나의 안은 고요를 넘어선 정지, 멈춤이다. 모든 것이 흘러가는 와중에 나만 홀로 붙잡힌 듯한 이 어색한 부유감. 물결이 남긴 모래는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다 이내 다시 물에 쓸려 간다. 텅 빈 해변에 오직 나만이 이 반복되는 춤을 지켜보는 유일한 관객이다.\n\n문득, 이 모든 것이 언제쯤 끝날까 하는 질문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이 차가운 체념의 모래 위에서, 따스한 모래를 밟을 날은 언제쯤 올까? 두렵지 않은 날은, 그 파도 앞에서 비로소 평온해질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내 안의 메아리는 답 대신 더 큰 공허를 되돌려준다. 마치 내가 이 광활한 풍경의 일부가 아니라, 그저 잊혀진 얼룩처럼 박혀 있는 기분이다. 삶의 의미를 묻는다는 거창한 질문조차도, 이 파도의 영원한 속삭임 앞에서는 너무나 작고 하찮게 느껴진다.\n\n점점 더 거세지는 파도 소리. 그것은 거대한 우주의 심장 박동 같아서, 나를 압도한다. 나는 일어섰다가 파도에 휩쓸려 넘어지고, 다시 숨을 쉬며 일어서려 하지만 파도는 또다시 나를 주저앉힌다. 이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는다. 나의 의지, 나의 희망, 나의 좌절... 이 모든 인간적인 감정들이 저 끊임없이 밀려오는 물결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하는 듯하다. 마치 내가 오래도록 쌓아 올린 모든 것이, 한순간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기분이다.\n\n나라는 존재가, 어쩌면 이 바다가 만들어낸 하나의 미세한 거품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터져 사라지는 것을 기다리는, 순간의 형상. 파도는 내가 넘어지든, 숨을 쉬든, 그저 제 할 일을 할 뿐이다. 나를 기다려주지도, 나의 고독을 이해해주지도 않는다. 다만, 묵묵히 제 시간을 살아갈 뿐이다. 이 숭고하고도 무자비한 진실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질문을 할 힘조차 잃어버린다. 내가 서 있는 이 모래 한 줌이 영원히 반복될 파도에 끝없이 씻겨 내려갈 것임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여기, 이 모래 위에 있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내 뺨을 스치고, 멀리 수평선은 변함없이 저물고 있다. 나는 이 거대한 순환의 한가운데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과의 무한한 단절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이 단절 속에서 어렴풋한 평화가 찾아온다. 나를 옥죄던 질문들이 파도에 쓸려가고, 오직 이 순간의 존재만이 남는다. 나는 아직 여기, 모래 위에 있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