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창을 비집고 들어와 거실 바닥에 길게 눕는다. 언제나처럼 익숙한 풍경인데, 이상하게 오늘은 그 빛깔이 더욱 옅게 느껴진다. 텅 빈 공기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나를 감쌀 뿐이다. 분명 어제와 같은 하루인데, 무언가 결정적으로 빠진 듯한 이 허전함은, 어쩌면 이 공간 자체가 감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체취는 이미 희미해졌지만, 공기 중의 미세한 흔적처럼 여전히 나를 붙잡는 것 같다.
나는 늘 앉던 소파에 몸을 기댄다. 쿠션은 여전히 그의 체온을 기억하는 듯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는 것 같다. 어제 그가 입고 벗어 던졌던 후드티가 소파 팔걸이에 무심하게 걸쳐져 있다. 옷자락 끝에 코를 박아본다. 잔향마저도 옅어진 지 오래인데, 왜 이렇게 미련하게 확인하고 싶은 걸까. 습관처럼 손이 리모컨으로 향하지만, 이내 멈칫하고 만다. 더 이상 함께 볼 드라마를 고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순간 목구멍을 메워온다. 탁자 위에는 마시다 남긴 컵이 하나, 그의 것이었던 머그잔이 말없이 놓여 있다. 그 안의 커피 자국은 마치 시간이 멈춘 흔적처럼 선명하다. 괜히 손끝으로 머그잔의 테두리를 쓸어본다. 매끄러운 감촉이 오히려 더 날카롭게 마음을 파고든다. 주방 한켠에 놓인 세탁바구니 속 그의 양말 한 짝, 욕실 선반 위 칫솔 하나. 이 모든 사소한 것들이 이제는 나를 비웃는 것 같다.
문득 시선이 닿은 곳은 며칠째 치우지 못한 그의 책상 위였다. 무심코 늘어져 있던 책 더미 사이에서, 꾸깃꾸깃 접힌 작은 메모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급하게 뭔가를 적다가 대충 버려둔 듯한 영수증 조각이었다. 단골 카페에서 함께 마셨던 라떼 두 잔. 흐릿한 글씨로 'Love, '라고 적혀 있던 흔적이, 반쯤 지워진 채로 나를 노려본다. 그 순간, 애써 눌러왔던 모든 감정이 봇물 터지듯 터져버린다. 손에 쥔 영수증이 형편없이 구겨진다.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다. 나는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아 버린다. 목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조용하고 힘없이, 마치 오래된 상처가 이제야 벌어진 것처럼, 온몸의 기력이 한순간에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잊으려 애썼던 모든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함께 웃고, 함께 울었던 그 날들이 영수증 조각 위로 덧씌워진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온몸에 힘이 풀리고, 차오르는 슬픔에 꺽꺽이는 한숨만 새어 나올 뿐이었다. 창밖으로 하늘은 여전히 맑고 푸르렀지만, 내 안의 세상은 여전히 먹먹한 안개 속에 갇혀 있는 듯했다. 재회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이 작은 소망. 그 미약한 조각 하나가, 이 허망한 공간을 채우는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젖은 눈을 감았다가 뜨자, 흐릿한 시야 속에 여전히 영수증 조각이 축축하게 쥐어져 있었다. 한참 후에야 겨우 일어선 나는, 다시 한번 그의 빈자리를 애틋하게 더듬어 보았다. 언젠가는 이 모든 흔적이 그저 추억이 될까. 아니, 어쩌면 평생을 함께할 그리움으로 남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