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에 든 작은 운동화 한 짝. 옷장 정리를 하다가 불쑥 튀어나온 물건이었다. 낡고, 색이 바랜 천은 오랜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분명 내 것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지금의’ 내가 신는 운동화는 아니었다. 손바닥에 올려보니 너무 작아서, 그 옛날 내가 얼마나 조그마한 존재였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그 무게는 가벼웠지만, 내 어깨를 누르는 기분은 꽤 무거웠다.
운동화 코끝에 묻어 있던 희미한 흙먼지가 시선을 붙잡았다. 그 흙먼지는 어쩐지 비에 젖은 흙탕물 같았다. 흐릿한 기억의 끈을 타고, 비 내리던 하굣길의 풍경이 저절로 재생되었다. 흠뻑 젖어 축 늘어진 교과서 가방, 무릎팍에 새로 생긴 상처, 그리고 발걸음마다 질척이던 운동화. 그 작은 운동화를 신은 채, 나는 그 비 오는 길을 얼마나 여러 번, 홀로 걸었을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두려움,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야만 했던 수많은 밤들. 그 길 위에서 나는 종종 혼자였다. 왜 그때는 그토록 모든 것이 무겁고 버거웠을까. 어깨를 짓누르던 감정의 무게에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던 순간들이 스친다.
내 손 안의 작은 운동화가 점차 그 시절의 내가 신은 신발이 아닌, 그 ‘작은 나’ 그 자체가 되어가는 듯했다. 비 오는 날 웅크리고 앉아 빗물처럼 눈물을 흘리던 작은 어깨. 나는 그제야 똑똑히 보았다. 그때의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주변의 시선에 움츠러들고,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잘 버텨보려 했지만, 모든 시도가 좌절로 돌아오는 순간들. 그 작은 운동화는 쉼 없이 뛰었지만, 항상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이었겠지.
운동화를 감싸 쥔 손끝으로 따뜻한 온기가 스며들자, 내 안에서 뜨거운 감정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이 작은 운동화를 신은 네게, 지금의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였다. 차갑게 식어버린 운동화에 온기가 닿도록,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감당하기 버거웠던 모든 순간들을 나는 이제 안다. 그토록 혼자였던 시간 속에서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얼마나 용감하게 버텨냈는지.
운동화를 제자리에 내려놓고,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모습이 마치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이젠 그 작은 너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안다. 아프고 힘들었던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안아줄 시간이다. 나의 작은 영웅에게. 정말 잘 버텼다고, 말없이 속삭였다. 이제 내가 네 옆에 있어줄게. 언제까지고.